장 마
물기 머금은 바람이 창문을 타고 넘어온다
살갗에 촉촉 안기는 습기들은
메마른 가슴에 그리움을 일깨우고 있다.
일기예보는 장마철이라고 알려준다.
퍼붓겠지. 마치 하늘구멍을 내고
미쳐 흐르지 못했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 내겠지
그런 날엔 그저 멍청히 하늘만 바라볼 뿐이겠다
가슴이 물먹은 이불처럼 비에 젖고 나면
무거운 몸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이다
몸이 기억하는 상처(傷處)는
장마와 함께 일어났다
장마와 같이 사라진다.
장마가 떠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퇴약볕이 내리 쬐이며
내 몸은 서서히 말라가면서, 조금씩 잊어가면서
나는 또 한 여름을 지날 수 있겠지.
다시 장마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장마의 계절
하얀 빛으로 잠시 눈멀게 하는 번개처럼,
우르릉 귀멀도록 가슴을 두드리는 천둥처럼,
차곡차곡 잘 접어놓은,
꾹꾹 우겨넣어놓았던,
미망을 꺼내 놓고
잠시나마 흔들리며 미쳐보자.
미친 듯이 쏟아 붓는 장마비처럼,
아픈 시간이 서서히 다가온다.
그래, 젖어주자. 끝없이 내릴 것 같은
이 빗물을 받아주자.
그리고 또 한해의 미망을 건너가보자.
14년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찾아온 장마는
올해도 나의 미망(未忘)을 깨우러 온다고 한다.
이제 곧 장마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