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사는 세상/시, 그 쓸쓸함

피안(彼岸)의 그늘

함께모두 2011. 6. 27. 22:15

피안(彼岸)의 그늘

 

길을 걸어간다.

나무도, 풀도 없는

땡볕의 마른 땅위를 걷고 있다.

입안을 적셔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운 어깨를 간신히 지탱한 체

내가 걸어가는 건지,

땅이 지나가는 건지,

울퉁불퉁 솟아나는 지면이

덜컹 덜컹 걸리적 거리면서, 흔들리면서

 

쉴 곳이 없다.

48년 넘게 걸어온 길을 돌아봐도

편안히 다리를 뻗고 휴식을 누려 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치열했고, 언제나 피곤한 삶이었고

메마른 길이였다.

왜 이렇게 마른 땅위에 먼지를 일으켜가면서

가야만 하는 걸까.

 

사람이 없다.

길 위에 넘쳐나는 사람들,

즐거운 웃음들, 행복한 표정들

지나가면 체이는 게 돌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아니 사람이 아니다 사물들일 뿐,

무사히 안전하게 잘 건너가시라고

삐리리 삐리리 소리내며 친절을 베푸는 신호등

밤이면 넘어지지 말라고 길을 환히 비춰주는 가로등,

그것들과 다를 것이 없다.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길 위엔

그늘이 없다.

 

탐하고, 우쭐대고, 끝없이 먹어제끼고, 게으르고, 배설하고

기쁘다가 분노하고,

슬프다가 희희낙낙하고,

사랑하다 미워하고,

결국 제멋대로 욕심내고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끝없이

벌어지는 이전투구, 아수라장 속에서

사람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여정속에

잠시라도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쉴 수 있다면...

 

온전한 제 정신이 남아 있을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A4 한 장 만한 그늘이라도 있다면

그와 잠시 쉬었다 가고 싶다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 위엔

사람이 없다.

그늘이 없다.

 

하지만 

오늘도 터벅터벅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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