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彼岸)의 그늘
길을 걸어간다.
나무도, 풀도 없는
땡볕의 마른 땅위를 걷고 있다.
입안을 적셔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운 어깨를 간신히 지탱한 체
내가 걸어가는 건지,
땅이 지나가는 건지,
울퉁불퉁 솟아나는 지면이
덜컹 덜컹 걸리적 거리면서, 흔들리면서
쉴 곳이 없다.
48년 넘게 걸어온 길을 돌아봐도
편안히 다리를 뻗고 휴식을 누려 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치열했고, 언제나 피곤한 삶이었고
메마른 길이였다.
왜 이렇게 마른 땅위에 먼지를 일으켜가면서
가야만 하는 걸까.
사람이 없다.
길 위에 넘쳐나는 사람들,
즐거운 웃음들, 행복한 표정들
지나가면 체이는 게 돌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아니 사람이 아니다 사물들일 뿐,
무사히 안전하게 잘 건너가시라고
삐리리 삐리리 소리내며 친절을 베푸는 신호등
밤이면 넘어지지 말라고 길을 환히 비춰주는 가로등,
그것들과 다를 것이 없다.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길 위엔
그늘이 없다.
탐하고, 우쭐대고, 끝없이 먹어제끼고, 게으르고, 배설하고
기쁘다가 분노하고,
슬프다가 희희낙낙하고,
사랑하다 미워하고,
결국 제멋대로 욕심내고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끝없이
벌어지는 이전투구, 아수라장 속에서
사람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여정속에
잠시라도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쉴 수 있다면...
온전한 제 정신이 남아 있을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A4 한 장 만한 그늘이라도 있다면
그와 잠시 쉬었다 가고 싶다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 위엔
사람이 없다.
그늘이 없다.
하지만
오늘도 터벅터벅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