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일본축구협회에 보낸 이메일은 굴욕적인 문서였다. 축구협회의 해명과 달리 '자충수'를 둔 저자세 스포츠 외교의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
중앙일보가 16일 단독 입수한 공문에 따르면, 축구협회가 일본축구협회에 보낸 해명 이메일에는 전체적으로 우리의 저자세 외교와 박종우 행동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표현이 다수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측의 '너그로운 이해와 아량을 베풀어달라'는 굴욕적인 표현도 있었다.
축구협회는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 결정전 직후 박종우(23·부산)가 벌인 '독도 세리머니'와 관련해 일본축구협회에 해명 이메일을 지난 13일 보냈다. 일본 언론은 14일 "대한축구협회가 일본에 사죄(謝罪)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축구협회는 "오보다. 사과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전문은 외교문서라 공개할 수 없지만 확대 해석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입수된 이메일 원문을 보면 창피함에 고개가 돌려지는 문구들이 줄줄이 있다. 먼저 조중연 축구협회장 자필 사인이 적힌 여섯 개의 문단으로 된 영어 공문 제목은 "unsporting celebrating activities"이라고 적혀 있다. unsporting이란 '스포츠정신에 위배되는 또는 정정당당하지 않은'이란 의미다. 문제가 됐던 사과의 의미가 담긴 구절은 2번째 문단에 "우리는 그 사고(incident)에 대해 심심한 유감(regret and words)을 표시한다"고 했다.
3번째 문단에는 '첫 동메달 획득으로 승리에 도취된 우발적 행동' 등으로 설명이 가득하다. 잘못된 행위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처럼 느껴진다. 이어 4번째 문단에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코치와 선수들에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강한 지침을 주고, 교육을 시키겠다"고 해 우리 측의 잘못임을 인정했다.
마지막 문단에 굴욕 외교의 저자세가 절정에 달했다. "우리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해서 (이번 일에 대해) 일본축구협회가 너그러운 이해(kind understanding)와 아량(generosity)을 베풀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highly appreciated)"고 적었다. 축구협회가 원문을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외교 공문이라고 보기엔 낯뜨거울 만큼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도 여러 곳 발견됐다. 능동을 수동으로 쓰거나, 미래형을 과거형으로 쓰는 초보적인 비문이 네 군데 있다. 문건의 최종 확인도 거치지 못할 만큼 급하게 보냈거나, 영문으로 번역한 축구협회 국제국의 실력이 수준 미달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다시는 재발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It should not happened(happen의 오기) again'이라고 쓰는가 하면, 한국 대표팀 선수를 'korea(korean의 오기) national team players(player의 오기)'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미 수많은 팬들은 축구협회가 일본에 이메일을 보낸 사실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축구협회 게시판에 “일본에 꼬투리 잡힐 일을 했다”, “축구협회 임원 퇴진 서명운동” 등의 항의 댓글을 올리고 일본에 보낸 이메일의 전문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굴욕적인 표현들이 가득 담긴 이메일 전문이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원진 중앙일보 기자, 박린 기자 jealiv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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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방위서 드러난 ‘박종우 사건’의 문제점
일간스포츠 | 송지훈 | 입력 2012.08.17 21:43
[일간스포츠 송지훈]
양파 같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속살이 나온다.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리스트 박종우(23·부산)의 '독도 세리머니' 관련 대응방식을 두고 체육계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박종우의 행동에 대해 일본축구협회에 저자세로 해명한 이메일이 17일 공개되자(본지 단독보도)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다. 이에 이날 오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긴급 현안보고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 및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등 단체장과 함께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등 실무자들이 출석했다.
문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한국 스포츠외교의 처참한 현실이 드러났다. 문제가 된 이메일은 대한축구협회가 일본축구협회에 보낸 것으로, 축구협회 국제국에서 작성됐다. 공개된 이메일 사본을 보면 조 회장의 사인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조차 조 회장이 직접 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박종우가 독도 세리머니 이후 시상식 및 귀국 환영회 등 모든 공식 행사에 불참한 근거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의문 투성이다.
◇조중연 회장의 서명은 도장?
김주성 사무총장은 국제축구연맹(FIFA) 본부가 있는 스위스 취리히에 갔다가 17일 오후 귀국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문방위에 출석했다. 그는 "일본축구협회에 발송한 메일의 결정권자는 나다. 조중연 회장에겐 메일 발송 이후 별도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종우 해프닝과 관련해 일본축구협회의 감정적인 대응을 방지하기 위해 일본축구협회에 유감의 뜻을 나타내는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내가 협회 국제국에 의뢰해 내용을 작성했고, 직접 검토한 뒤 발송했다"는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하지만 공문에 선명히 들어간 조 회장의 서명이 문제가 됐다. 회장 서명이 들어간 메일을 발송한 뒤에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게 앞뒤가 안 맞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회장의 서명이 들어가는 문서를 사무총장이 임의로 보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상사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한 것 아니냐"고 질책했다. 하지만 김 총장은 "내가 보낸 것이 맞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조 회장은 "국제국에는 사인방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조 회장이 아니더라도 도장을 찍어서 회장 사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김 총장의 말대로 조 회장에게 이메일 내용을 보고하지도 않은 채 사인 도장을 찍어 발송했다면 축구협회의 심각한 행정력 부실을 드러낸 것이다. 반대로 조 회장이 직접 사인을 한 것이라면 축구협회가 수장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박종우 '메달 박탈 위기론' 실체 있나
조 회장은 일본에 '굴욕 이메일'을 발송한 이유를 묻는 국회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메달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박종우를 구제하기 위해서였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근거로는 11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자축구 시상식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대한체육회 측에 박종우의 시상식 불참을 권고했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메달 박탈 위기'의 실체가 의심스럽다. 증인석에 출석한 체육회 관계자는 "남자축구 시상식을 앞두고 일본계 미국인인 IOC 연락관으로부터 '시상식에 박종우가 참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맞다. 하지만 대회 조직위원회가 동메달을 17개(최종엔트리는 18명)만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IOC가 박종우의 메달을 박탈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시상식에 박종우가 참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IOC 연락관은 메달 박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사결정권자인지 묻는 질문에는 체육회 관계자 누구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박종우가 FIFA 상벌위원회에 회부된 건 맞지만, 이 사실이 곧 메달 수여 취소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런데 체육회와 축구협회는 IOC의 시상식 불참 권고를 순순히 따랐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축구 선수단 전체의 메달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에 박종우를 참석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체 메달이 박탈될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한국이 과잉대응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