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을 하는 직원이 연이틀을 결근을 해서 집으로 찾아가봤다.
단독주택 대문 밖에서 직원의 이름을 부르니 처음엔
막내 딸인 듯한 아이가 누구냐고 묻더니,
아빠 계시냐고 물으니 한참 대답이 없다.
그리고 둘째 아들녀석이 나와서 누구시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하고 같이 다니는 회사 아저씨라고 하니 대문을 열어주었다.
대문 입구에서 현관문까지는 두어발자국도 되지 않는 구옥 단독주택이다.
특히나 요즘 재개발이다 해서 동네 자체도 을씨년스러운데...
대문안을 들어서니 아이들 롤러스케이트, 자전거...
안싣는 신발들이 널부러져 발을 디디기 조차 힘들정도였다.
사내아이는 안면이 있는 나에게 미안헀던지...
'집안이 어지러워서요...' 라고 말을 하며 낯을 붉혔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집안 거실엔 장난감이며, 이부자리며, 책이며, 먹다 버려진 과자봉지들까지
체 치우지 못한 생활흔적들이 온통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 속에 직원은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낯선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누워있는 그의 앞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막내 딸 아이가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아저씨 오셨어... 아저씨 오셨어... 흔들어 깨워도 정신을 못차린다.
막내딸은 이제 초등학교 4학년, 둘째 아들녀석은 중학교 2학교,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큰 딸은 아직 귀가 전인가 보다.
언제부터인가 무릎이 않좋다고도 하고, 허리가 않좋다고도 하더니
지방 출장 공사를 8일간 다녀와서 며칠을 더 일하더니
결국 자리에 눕고 말았던 것 같다.
딸아이의 채근에 게슴츠레 눈을 뜬 직원은 나를 쳐다보며
누군지 잘 알아보지 못하겠다는 듯, 자꾸 나를 올려다본다.
그렇게 올려다보는 그에게서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무어라도 드셨니? 하고 물어보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몸이 아프니 입맛도 없었을테고, 그저 술만 먹고 잠만 잤는가 보다.
이제 나이 48세이지만 이 남자의 나이는 어딜가도 50대 중반으로 볼만큼
많이 야위고, 머리카락도 다 빠져버리고, 피부도 거칠어져버렸다.
자기 자신이 꾸밀 줄도 모르지만, 그 흔한 스킨, 로션하나 바르지 않고
그저 자식 삼남매를 열심히 간수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아내와 이혼한지는 7년여 되어가는 듯 한데, 왜 이혼을 헀는지는 묻지를 못했었다.
다만 이혼하면서 왜 혼자만 아이들을 다 맡아 키우게되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셋이나 낳은 것도 그렇지만 자신은 자식 욕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혼하면서 이혼한 아내에게 키우라는 말도 않했지만
아이들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한다.
이혼하고 나서 아이셋을 데리고 안산으로, 안양으로, 영등포로 이사하면서 키워오고 있다.
그나마 지금의 직장에서 4년을 넘게 있었고 다른 직장에서는 오래있지 못했었던 것 같다.
헤어진 아내 얘기가 나왔을때,
아이들은 가끔 이모 집에 갔다온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합치는 것은 어떻냐고 물어보니
아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누군가 중간에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가능성 없을 일일 것 같았다.
남의 가정사에 함부러 개입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또 나선다고 할지라도 별뾰족한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해봤었을 뿐이다.
몇달 전 가게에 온 여자 손님과 중간 다리 역할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한동안 잘 지내는 것 같더니 그것마져도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여자쪽에선 적극적이였는데 오히려 직원의 태도가 소극적이다 보니 잘 안되었던 것 같다.
두사람이 연애할 때만 해도, 잠시동안이지만 술도 끊고 혈색도 돌고 활기있게 생활을 하더니
그마져 깨지고 나서는 풀죽은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자리에 누워서 겨우 아는 체 하는 직원에게
내일은 당장 병원부터 가보라고 했다.
무어라고 대답은 하는데 술에 취해서인지, 잠결인지 도무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내일은 고모에게 연락해서라도 아빠를 꼭 병원에 모시고 가라고 말을 했다.
아빠 일어나시면 아저씨가 사온 죽이라도 드시게 해서 기운차리게 하라는 당부를 하고 그 집을 나섰다.
대문 밖을 나오니 집안에선 막내 딸이 일어나서 죽 먹으라며 아빠를 채근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겨울 늦은 밤, 오늘 따라 날씨가 우중충하다.
대설 추위가 한 몫 한다고 추운 날씨에 내일은 전국에 눈이 내린다고 한다.
어쩌면 내일 아침이 되면 발목까지 푹푹 빠져버리는 폭설이 내릴 수도 있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같은 생각만 떠올랐다.
철모르는 저 아이들 셋을 나두고 혼자 나간 아이들의 엄마는 잘살고 있겠지...잘살고 있겠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자니 자꾸 눈이 침침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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