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나절에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아서
잠든 바다를 보았다.
밤새 천둥번개에 시달려 피곤했는지 바다는 잠자고 있었다.
소리없이 차분히 내리는 빗속에
바다는 작은 연락선 몇개를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묶어놓고
물안개를 덮고 잠들어 있었다.
북적거리는 서울에서 멀지도 않은 거리.
시원하게 뚫린 인천국제공항 도로위를 40여분 달리고 나면
우측편으로 안내판엔 무의도(舞衣島)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작년 이맘때도 이곳에서 일박을 하면서 지냈었다.
힘든 현장일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피곤함에 절어있는 생활에서
잠시나마 서로에게 여백이 필요하겠다 싶어
작년부터 제안을 해서 올해로 두번째 야유회를 만들었다.
어떤 올바르지 못했던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간은 생각할 틈을 주면 안된다...시간이 나면 잡념을 가지게 되고
잡념이 생기면 일탈을 꿈꾼다. 그래서 끊임없이 일거리를 만들고 생각할 틈을 주지 말라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피곤한 삶을 살아왔던 과정을 보면 절박하게 밥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순간들은
여유, 여백이라는 것은 사치였고,
소위 말하는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호사라고 생각할 만큼
그렇게 절박하게 살았던 기억들도 있다.
사람을 노동하고 생산해야하는 도구로 수단으로 여긴다면
나도 사회주의를 꿈꾸지만 그 말은 한편에서만 보면 참 딱 맞는 말 일 수 있겠다.
배를 타고, 깊지 않는 바다를 떠다니며
반나절 이상을 손바닥 만한 물고기를 잡겠다고
비에 온몸을 젖어가며 바다를 헤집고 다녔다.
있지도 않을 대박을 꿈꾸며
승선한 8명의 조사들이 건져올린건
손바닥보다 작은 우럭 8마리.
미안했는지... 전세낸 배의 선장은 여기 저기 연락해
광어, 숭어, 꽃게들을 사들여서 회를 쳐주고 매운탕을 끓여주었다.
배 위에서 먹는 싱싱한 회 맛이란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펄펄 살아있는 생선 살의 맛인지, 달달한 초장 맛인지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그 맛'이란 회집에서 푸짐하게 썰어놓은 죽은 생선과는 다른
'생동감'의 맛이 따로 있다.
오늘 아침 반나절 까지는 나는 분명 살아있었다.
전날 밤 노래방에서 펄펄 뛰어오르며 춤 출 때까지도 살아있었다.
몸을 뒤틀고, 악을 쓸때만 해도 나는 살아있는 활어(活魚)였다.
아침나절에 깊은 잠에 빠진 바다를 보면서
서서히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일박을 하면서 잠시 펄펄 살아있던 꿈을 꾼 나는,
멀리 내려다보이는 숨죽인 도시를 보니
내가 서있는 현실이 쓸쓸하다는,
나 혼자라는 생각을 한다.
무의도(舞衣島)의 일박은
장군복을 입고 춤추었던 그녀처럼
혼자 용을 쓰다가 지처 나가 떨어져
후즐근해진 헝겁처럼 늘어진다.
내 자리로 돌아와서 이렇게 허탈하고 쓸쓸할 걸
나는 왜 그리도 자연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을지...
굿거리가 끝난 무의도의 그녀도 이만큼 쓸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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